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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의 주인공》후속보도(5)최광일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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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룡| 작성일 :18-12-02 11:34| 조회 :89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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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변축구 영광의 시절에 퇴역한 축구선수 최광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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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광일.

 

‘97’갑A련맹경기는 연변팀은 물론 연변의 허다한 축구팬들에게 평생 잊혀지지 않는 감동과 격정의 시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 해 시즌에서 연변팀에서는 한국감독 최은택의 인솔하에 련속 9껨의 경기에서 불패의 신화를 창조하고 최종 갑A리그 4강이라는 훌륭한 경기성적을 따내면서 중국축구무대에서 신선한 연변축구바람과 오동선풍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연변축구 영광의 시절을 뒤로 하고 아쉽지만 퇴역할 수밖에 없었던 한 축구선수가 있다. 불처럼 뜨겁게 타오르던 ‘97’갑A련맹경기시즌에서 대련만달팀과의 경기에서 무릎부상을 입고 두차례의 수술을 받으면서 부득불 갑A축구무대에서 퇴역할 수밖에 없었던 불운의 축구선수, 그가 바로 연변오동팀의 공격수로 한때 경기장을 종횡무진으로 주름 잡던 최광일선수이다. 

 

1966년, 왕청현에서 태여난 최광일은 어려서부터 축구에 남다른 재능이 있었다. 소학교는 물론 초중, 고중까지 계속 당당하게 학교축구팀에 첫 사람으로 뽑힐 정도로 축구에 대한 재능이 뛰여났고 발전가능성이 엿보이는 축구신동이였다. 최광일은 키는 비록 그리 크지 않았지만 달리기속도가 매우 빠르고 공다루기에 능수능란하여 공격수위치에서 뽈을 차는 것을 좋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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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주 동계훈련시 련습경기에 앞서 전술을 포치하고 있는 최광일. 

 

최광일이 왕청현체육운동학교에 입학한 이듬해인 1979년, 전 주 체육운동학교들의 축구시합이 도문시에서 펼쳐지게 되였다. 그 때 마침 13—16살 단계 후비축구선수 발굴과 모집을 위해 연변체육운동학교의 정종섭 감독이 경기장을 찾았다. 정감독은 최광일이 뽈을 차는 것을 유심히 지켜보고 마음에 들어 왕청현체육운동학교에 최광일을 지명해 요구했다. 

 

1985년에 연변체육운동학교를 졸업하기까지 최광일은 6년간 공부했다. 그 때 그와 함께 공부했던 학생들중 우수한 축구인재들이 많았는데 이름만 들어도 연변축구팬들에게 인상이 깊은 김광주, 방근섭, 박문호 등 축구선수들이 모두 최광일과 동기생들이였다. 

 

최광일은 1985년에 행운스럽게도 국가청소년팀에 선발되여 ‘소월드컵’이라고 불리우는 ‘기린컵’ 세계청소년 제1회 축구시합에 참가하기도 했다. 나라를 대표해 출전전포를 입은 최광일은 왼쪽 변선공격수로 경기장에서 활약했으며 동료선수에게 도움꼴을 만들어주면서 중국팀에서 최종 8강에까지 진출하는 데 적극적인 역할을 하였다. 

 

연변체육운동학교를 졸업한 후 최광일은 길림성청년팀에 들어가 공격수로 뛰였다. 최광일은 키가 1.70메터로서 축구선수로 놓고 말하면 작은 키에 불과하지만 폭발력이 아주 강했다. 그는 특히 상대 수비수의 뒤를 파고 들어가는 기술에 능해 경기장에서 적극적인 활약을 보였고 꼴도 많이 넣었다. 

 

최광일은 길림성청년팀에서 공격수로 있으면서 전국청년축구련맹경기에 참가하여 8강에까지 진입하는 우수한 성적을 따내기도 했다. 경기에서 표현이 좋아 최광일은 1986년 년말에 길림성1팀에 선발되였다. 1987년에는 제7회 전국운동대회에 길림성을 대표해서 참가하는 영예를 지니기도 했다. 김광주, 방근섭 그리고 최광일 등 세명의 동기생들이 그번 경기에서 주력선수로 참가하여 실력을 남김없이 발휘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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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연변삼성팀 집단사진 앞줄 오른쪽으로부터 다섯번째 최광일. 

 

최광일은 국가청소년팀, 국가청년팀, 국가올림픽축구팀 등 세개나 되는 국가급 축구팀에 선발된 경력이 있는데 조선족선수로서는 이 같은 경력이 결코 흔치 않다. 

 

1994년도부터 중국의 직업축구 개시와 함께 연변축구가 큰 인기를 모았다. 축구팬들이 경기가 있는 날이면 경기장 주변의 나무에까지 올라가 경기를 관람하였고 리옥희, 유병걸 등 유명연예인들이 자진하여 응원팀의 팀장으로 나서서 경기장을 화끈 달아오르게 했는데 당시 연변의 축구분위기는 정말 뜨거웠다. 최광일선수는 축구선수들에게는 축구팬들의 열띤 응원과 함성이 무궁무진한 힘과 용기를 준다면서 홈장의 우세는 바로 이러한 뜨겁고도 열렬한 축구분위기일 것이라고 말했다. 

 

1997년도는 연변축구사상 영원히 기록되여야 할 특수한 한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것도 그럴 것이 이 해에 연변오동팀은 한국감독 최은택의 인솔하에 연변팀 갑A리그사상 처음으로 4강까지 진입하는 기적을 창조했기 때문이다. 당시 연변의 축구열기는 하늘을 찌르듯이 높았으며 전국적으로도 연변오동팀의 괄목할 만한 축구현상을 대서특필하는 등 집중조명을 받았다. 

 

그런데 이러한 영광의 시절에 최광일은 아쉽게도 축구무대를 떠나야 하는 운명의 갈림길에 놓여있었다. 그 해 대련만달팀과의 경기도중에 무릎부상으로 크게 다쳐 두차례의 수술을 받았고 나이도 서른살을 넘겨 아쉬웠지만 정든 경기장과 동료들과 작별하고 퇴역을 선언할 수 밖에 없게 된 것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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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오주동계훈련에서의 연변주체육운동학교 선수들. 

 

1999년도에 모교였던 연변체육운동학교에 돌아온 최광일은 몸은 비록 경기장을 떠났지만 축구인재양성사업에 심혈을 몰부었다. 그동안 최광일은 1999년생 년령단계 축구선수양성을 4년간 틀어쥐고 축구구락부에 선수들을 수송해 보냈다. 최광일이 양성한 선수들중에는 현재 연변부덕팀의 문지기 지문일 등 우수한 선수들이 적지 않다. 

 

최광일은 2004년도에 한국 인하대학교에 가서 축구운동석사공부를 마치고 2007년 3월에 석사학위를 따고 돌아왔다. 그 기간 최광일은 한국의 유명한 축구감독 차범근의 축구교실에 가서 애들을 가르치면서 경험과 노하우들을 많이 배우고 습득했다. 

 

최광일은 현재 2005년생 년령단계의 축구꿈나무들에 대한 모집과 양성을 진행하고 있는 중이다. 이 단계 축구꿈나무들을 데리고 2017년 1월 동계훈련까지 다녀왔고 그해 7월에는 이딸리아 집중훈련을 다녀오게 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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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중국스타팀 대 연변스타팀 경기장면. 

 

최광일은 한치의 흔들림도 없이 지금까지 근 40년 동안의 시간을 축구사업에 바쳐온 과거를 단 한번도 원망해본 적이 없다고 말한다. 어려서부터 축구를 사랑하고 좋아해서인지 축구와 함께 하는 인생이 항상 즐겁고 기쁘다고 말했다. 선수시절에는 좋아하는 축구를 직업으로 마음껏 할 수 있었던 시간들이 참 행복했고 퇴역 후인 현재는 좋아하는 축구를 위한 인재양성에 정력을 바치니 하루하루가 즐겁고 행복하다고 했다. 

 

연변축구의 발전과 축구인재양성은 서로 관계가 있다고 최광일은 말한다. 10여년 전까지만 해도 연변팀이 성적부진으로 허덕일 때 청소년축구양성사업도 부진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연변팀이 현재 슈퍼리그에서 뛰고 있고 연변축구도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 지지를 받으면서 연변청소년 축구교육도 열기가 느껴지고 발전가능성도 계속 더 크게 열려지고 있다고 말했다. 

 

최광일의 꿈은 금후 연변태생의 축구인재들을 더 많이 양성하여 연변축구를 진정으로 우리가 주도하고 이끌어나가고 싶은 것이다. 

 

/길림신문 김룡 안상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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